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51 머스탱 (문단 편집) === 엔진 교체 이후 === P-51B형부터는 엔진의 교체로 속도의 향상 이외에도 조종석 후미 공간에 자동 방루 연료 탱크를 장착하고 외부 추가 연료 탱크를 장착하니 항속거리(2,700km)도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다. 덤으로 머스탱의 순항속도는 443km/h. 이는 항속거리가 길기로 유명했던 일본군의 후기형 [[A6M]](외부 연료 탱크 추가시)보다도 무려 100km 이상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초기형 제로센의 항속거리 3,300km(외부 연료 탱크 장착시)도 200km/h의 순항속도로 달성한 것이고 이조차도 전력출력의 상태로 비행하면 머스탱보다 더 숏다리가 된다.[* 연료 탱크 탑재가 밸런스에 악영향을 주어 성능을 저하시킨다는 얘기가 있지만, 머스탱은 장거리 호위기라서 전투공역 상공에 도달할 때 즈음이면 성능을 저하시켰던 연료는 이미 써버리고 없어서 비행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항속거리 저하는 폭격기 호위임무에 피해를 준다. 영국 본토 항공전때 [[Bf 109]]의 낮은 항속거리 때문에 결국 [[루프트바페]]가 패배한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제로센과 머스탱의 단순 비교가 무리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조종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답이 간단히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제로센의 항속거리편 조종사의 피로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된다.] 덕분에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물론, 쌍발기인 [[P-38 라이트닝]]이나 항속거리를 억지로 잡아늘려도 2,000km에 불과했던 [[P-47 썬더볼트]]보다 더 효율적으로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원래 P-51 등장 이전까지는 연합군 기종 중 그래도 항속거리가 제일 길었던 P-47이 폭격기 호위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그러나 P-47도 프랑스-독일 국경 즈음 와서는 폭격기 대열과 작별하고 기지로 귀환해야 했으며, 당연히 [[Bf 109]], [[Fw190]] 등 독일 전투기들은 이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폭격기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연합군의 폭격, 특히 미군의 주간폭격이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도 멀린 엔진의 라이선스를 롤스로이스 사로부터 부랴부랴 사온 후 해당 엔진 탑재형 머스탱을 생산하여 P-51B/C로 제식채용했다. 그러나 P-51B 배치 직후 미 육군 항공대는 A-36 시절의 떨어지는 고고도 비행 성능 때문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해서 지상 공격부대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였다. 이후 폭격기 호위임무에 P-51B을 한 번 투입해보니 그야말로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최우수 클래스의 속도와 [[호위기]]치곤 괜찮은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폭격기를 요격하기 전에 우선 호위로 붙은 머스탱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나 적당한 성능에 확실한 수적 우세로 밀어붙였기에 독일 공군이 머스탱을 압도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 당시 독일 상공을 수비하던 독일군의 전투기는 폭격기만 상대하면서도 하늘의 요새라는 별명의 B-17 특유의 방어 무장에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는데[* 슈바인부르트 대공습 당시 미군은 60대의 폭격기를 잃었고, 독일군은 31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독일 입장에서는 B-17을 요격하는게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었고, 미국 또한, 단발 전투기 1대랑 4발 중폭격기 2대를 교환하는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손해였다. ] 항로 내내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가 따라붙게 되자 요격은 삽시간에 헬난이도가 되었다. 한 가지 특이사항으로 물방울형 캐노피를 도입하기 전인 P-51B/C형 머스탱은 그 외형이 독일의 [[Bf 109]]와 유사해서 실제로 멀리서 보면 식별이 어렵다는 말이 자주 들려왔다.[* 이 때문에 P-51의 기체설계를 독일 회사에서 Bf 109 관계로 일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기사가 했다는 루머가 생겼다. 이 루머가 마치 사실인양 퍼져 있기도 한데 사실 에드거 슈미트(Edgar Schmued) 주임설계기사가 독일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 온 사람이긴 하지만 Bf 109와는 관계없던 사람이다.] 크기는 머스탱이 Bf 109보다 크지만 멀리서 실루엣만 보이는 경우, 특히 버블 캐노피를 장착하지 않은 초기형의 경우에는 더욱 구분하기 어려웠다. 헷갈릴 정도로 유사한 외형은 전장에서 P-51 잔혹사를 만들어냈다. 잘 비행하는 중인데 아군 대공포가 사격한다거나 혹은 전장에서 아군 전투기, 심지어는 호위대상인 폭격기의 방어기총사수들까지도 적기로 착각하여 쏴버릴 정도였으니 이로 인해 [[팀킬|아군오사]]에 고통받기도 했다. 물론 반대로 Bf 109가 P-51으로 오해받아 독일군에게 팀킬당하는 경우 역시 다분했다.[* 특히 [[보덴플라테 작전]] 때는 '''독일공군 잔존전력의 대부분을 출격시켰더니만 X나 많이 오는 편대는 연합군 편대라는 생각을 한 대공포병들이 우군에 갈겨대는''' 추태까지 보였다고. 덕분에 [[Me262]] 한기가 그날 팀킬로 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나머지는 '''[[반자이 돌격|미군과 영국군에게 그대로 일본군 하던 짓]] 했다가 [[끔살|증발당했다.]]'''] 유명한 일화 중에는 한참 독일 본토 폭격이 진행중일 때 폭격기의 기총사수가 신나게 기총을 쏘다가 실수로 아군 호위기 P-51을 격추시키는 사고를 터뜨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기총사수는 "아이고 맙소사 난 이제 죽었어"라 외치며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될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에라 모르겠다라며 당시 요격용으로 별로 쓰이지도 않았던 Bf 109E형으로 격추보고를 올려버렸다. 그런데 다른 폭격기의 기총사수가 Bf 109E 격추가 맞다고 증언해주는 바람에 적기 격추로 기록된 적도 있었다.[* 항공전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미국에서는 현장의 조종사 출신이라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심각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빠심이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특히나 실증 및 비행역학, 유체역학연구를 통한 '실증'을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전통이 있다. 더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인간의 기억은 매우 편향적이며 실제로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증언이나 '이야기(anecdote)'에는 항상 '조금 회의적인 태도로 들어라(take in with a grain of salt)'라는 격언이 존재할 정도. 저런 프로그램에서 '기억하는 그대로' 재현해주는 것은 실제로 조종사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믿고 있고, 굳이 그것에 실증으로 태클걸만한 가치가 없는 흥미 위주의 대중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저 일화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분야든 학계는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역시 학계에서도 각종 자료를 동원해 조종사의 증언을 옳다고 뒷받침하기도 한다. 모든 상황이라는 게 단순히 카탈로그 스펙에서 보이는 수치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며, 당시 상황을 원자 단위 수준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제아무리 반론 자료를 가져와도 반박할 부분이 산더미처럼 나온다. 그나마 여기 나온 상황은 폭격기 승무원이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기를 친 상황이라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지 유명 에이스의 수기나 인터뷰는 무조건 거짓이라고 넘겨짚는 순간 그걸 재현하려 노력했던 학계 인사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격이다. 역시 학계는 만만치 않다.] 수뇌부에서도 아군 오인사격을 막아보자고 독특한 줄무늬를 그려 넣었고 나중에는 아예 도색이 안된 기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무도장의 은빛 기체는 P-51의 상징이 됐다. 미군 외에 일본군 전투기들도 나중에는 무도장 기체들이 나왔는데 이쪽은 페인트까지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한 짓이다. P-51의 도장제거는 경량화를 통한 기동성 향상의 목적도 있었으며 비슷한 이유로 1944년 이후로 생산되는 모든 전투용 항공기는 별도의 도장 없이 항력감소를 위한 왁스처리만을 하고 출고되었다. P-51의 경우 시험 비행에서 페인트 제거만으로 시속 23마일 정도의 속도 향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속도는 매우 우수했으며, 전투기로서의 선회성능이나 지속상승률 등도 평타는 쳤다. 다만, M2의 화력이 다소 빈약하고 급탄 불량이 자주 일어나며 후방 시야가 불량하다는 단점도 지적되었다. 이 캐노피의 경우 여닫는 방식이 약간 복잡해서[* 단순히 앞뒤로 미는 게 아니라 옆면과 윗면을 각각 열어야 했다.] 탈출시 애로사항이 많았고 키가 큰 조종사들에게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에 장착했던 말콤 후드를 가져와 마개조한다. 영국은 대부분 이걸로 바꿨고 미국은 몇몇 비행대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운용하다 D의 버블 캐노피로 갈아탄다. 때문에 물방울형 캐노피가 도입된 P-51D형(영국명 머스탱 Mk.IV)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처럼 반쯤 버블 캐노피 형상을 가지도록 개량되기도 했다. 이를 말콤 후드라 부른다. D형이 대세가 되고 이 B/C형을 D/K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개조키트 또한 제공되어 많은 수가 개조를 받게 된다. 덕분에 숫자는 P-51D가 많았으며 이것이 P-51로 널리 알려진 모델이기도 하다. 실루엣의 개성이 확실해진 덕분에 오인사격 문제도 대폭 줄어들었다. 비슷한 개량은 P-47 썬더볼트와 후기형 스핏파이어에도 적용되었다. 그 결과 P-51D형은 약 8,000대 가량 생산되면서 P-51계열 중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실질적으로 활약을 시작한 게 1943년 11월 경이니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P-51 계열기가 파괴한 적기는 공중전에서 4,950대, 지상파괴 4,131대에 달한다.[* 미 육군 항공대의 P-51 손실집계는 2,520대이다. 독일측에선 2700대 가량을 잃고 3000대를 격추했다고 한다. 독일 측 자료는 대전 말 혼란으로 인하여 대부분이 소실되어 버리고 각 비행대에서 각자 기록한 단편자료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기 요격 노력은 단발전투기 뿐만 아니라 쌍발전투기, 심지어는 경폭격기까지 동원한 총력 요격체제였고 폭격기만 중점적으로 요격하면 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전술적 상황이 단순했다. 하지만 P-51의 등장으로 호위전투기와의 교전이 본격화되면서 숫적으로 열세인 방공부대가 폭격기 요격부대와 요격부대의 호위부대로 이원화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폭격기의 방어화망과 호위전투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압사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연합군 전투기들이 호위뿐만 아니라 자유추적 임무로 풀려나서 단독 전투기 공격을 시작하면서 공중에서 독일 공군 군용기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게 된다.] 단적으로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독일 공군의 소티 수는 1944년에 1만대를 겨우 넘겼던 반면 같은 기간 미 육군 항공대의 소티 수는 60만에 달했다. 이 당시는 전공 보고의 경우 도리어 독일 공군의 보고를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미국쪽 자료를 참조하는 게 더 신빙성이 높다. 이 시기 독일은 독소전의 영향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고 심지어 마지막 반격이라고 수행했던 시타델 작전도 쫄딱 말아먹어 서쪽으로 패주하던 상황이다.[* 하지만 독일측 격추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는게 선전목적으로 격추기록을 늘린적은 없다. 선전으로 과장되어 발표한적도 있지만 공식문서는 변경되지 않았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뚜까맞은 이후 도리어 [[독일 본토 항공전]]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바람에 본토가 폭격당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이에 관해 선전하지 않았고 국민들도 본토가 폭격당한이후엔 믿지 않았다. 전후 연합국 전투기 격추기록을 독일, 소련, 미국을 비교해 보았을때 독일측이 가장 적게 나왔다. 이는 제뢰베, 즉 바다사자 작전에 영향이 있는데 허황된 기록에 빡친 괴링은 격추기록에 관해 엄격해지고 승인을 덜 해주었으며 이에 실제로 격추시킨 것도 인정을 못받는 사태가 발생하였지만 미국에 경우 가끔 허황된 기록이 나오기도 하는데 독일 본토 폭격시 폭격기 편대에서 Bf 109 하나를 방어기총으로 격추하였으나 25기 격추로 보고됐다. 이는 폭격기 25대가 각자 보고하여 전투기 격추수가 늘어났으며 2차대전 말 1943 미국측에 보고면 이미 루프트바페에는 군수공장이 없으며 전투기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누가봐도 독일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군수공장도 일부 파괴되었지만 폭격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빅 위크 폭격주간에 경우 미국보고의 의존하여 루프트바페 에는 전투기가 없지만 없어야 되는 상태에서 호위 전투기를 띄웠으며 이때 대량의 폭격기들이 격추당했다.] 즉, 44년의 독일군은 전쟁 초반부의 전격전으로 유명한 그 독일군이 아니고, 철십자 훈장 남발하던 독일군이었으니 도리어 신빙성이 떨어졌다.[* 일부 틀린 사실이다. 일부 철십자 훈장은 원래 사기증진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2차대전 초기에도 뱃지 나눠주듯이 했고 일부 높은 수준의 철십자훈장은 전적이 뛰어난 병사들에게 수여되었다. 물론 높은 등급의 철십자훈장도 전보다 약간 많이 수여됐지만 전쟁을 오래할수록 대단한 전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 것은 당연하다. 일부 철십자 훈장은 정말 대단한 전과를 가진 사람에게만 수여됐는데 황금 다이아몬드 백엽 검 기사 철십자 훈장 수훈자는 500대의 전차를 격파한 최고의 공격기 조종사 한스 울리히 루델 단 한명뿐이다. 이 훈장은 2차대전 말인 1945년 1월에 수훈되었다. 이분은 혼자서 2개의 전차군단을 갈아마신 셈.]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arm4.staticflickr.com/9356238831_030e748388_o.jpg|width=100%]]}}}|| || 1943년 맥닐 육군 항공대 기지에 배치된 P-51D형[* [[http://www.flickr.com/photos/floridamemory/9356238831/|출처]]] || P-51D형은 주무장인 [[M2 브라우닝 중기관총|50구경 기관총]]이 B/C형의 4정에서 6정으로 늘었다. 물론 독일의 20mm 기관포인 [[MG 151]]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높은 발사율과 곧은 탄도, 신뢰성 등이 좋아서 B-17 같은 중폭격기를 상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화망]]을 순식간에 칠 수 있는 M2 중기관총이 전투기 상대로는 충분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기에 기총의 배치형태 등을 수정, 종종 발생하던 기총의 탄걸림으로 인한 작동불능 상태를 막았다. 이 점이 개선되지 않은 종전의 P-51B~C형은 종종 기총 2, 3정으로 싸우게 되는 일도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화력증대는 더 컸다. 이 외에도 연료 탱크 용량이 늘어났으며 기타 몇 가지 부분이 개량되었다. 전체적으로 늘어난 중량 때문에 기동성이나 최대속도는 P-51B/C보다 약간 떨어지게 되었으나 엔진 세팅을 변경할 수 있게 되면서[* -3 와 -7을 비교하면 도리어 고공 성능은 -3이 더 좋고 -7이 중/저고도에서 더 빠르다. 그리고 당시 엔진을 한 번 달면 끝이 아니고 개조 키트를 사용해 임무에 맞게 -3/-7을 교체하면서 사용했다.] 중-저고도 성능이 필요한 경우에도 대응이 가능했으며 강한 화력과 좋은 시야 때문에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P-51D를 선호하였다. 물론 일부 조종사들은 그래도 속도/기동성이 뛰어난 P-51B/C를 더 선호하기도 했다. 나중에 P-51B/C도 말콤 후드라는 측면이 불룩 튀어나온 캐노피를 사용하여 후방확인이 쉬워지고, 기총문제를 해결하여 기총고장 문제를 줄이기도 했다. 조종사들이 D형을 더 선호한 가장 원인은 수직 꼬리날개 디자인 변경으로 착륙 시 불안정성이 그나마 좀 덜해졌다는 것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D 후기형에는 자이로를 채택한 K-14 자이로 조준기가 장착되었다. 조종사들끼리는 통칭 '에이스 메이커'라 불리웠는데, 자이로 장치와 연동되어 예측 사격을 도와주는 흠좀무한 물건이었다. 기본적으로 조준선정렬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 기계식 조준기보다 빠른 조준이 가능하고, 적기의 크기와 이동속도에 맞춰 레티클 크기가 조절되므로 탄도계산을 할 필요가 없이 직관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므로 리드샷을 쏘기에도 매우 유리하다. 탄도컴퓨터라든지 레이더 연동 조준기가 없던 당시로서는 일종의 수동식 탄도컴퓨터이자 에임핵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당시 외계인 고문에 특화되었던 독일군도 이런 장치는 양산기에 장착하지 못했다.[* 다만 머스탱이 원시적인 탄도컴퓨터라 할 수 있는 자이로 조준경을 탑재했다면, Fw190부터의 독일기는 원시적인 출력조절컴퓨터인 [[Fw 190#s-3.6|코만도게래트]](kommandogerät)를 탑재해 간편한 조종 난이도를 자랑했다. 즉,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독일기가 막 뒤쳐지는 것은 아니고 머스탱은 화력, 독일기는 조종성에서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이 자이로 조준기를 채택한 것은 [[Ta152]]인데, 이건 양산기였지만 워낙 늦은 1944년 12월에나 양산체제로 들어가는 통에 양산기 취급도 못받는다. Ta152가 양산 체제에 들어갈 정도로 독일이 버틸 수 있었다면 그 세계의 독일은 최소 다른 세계의 독일일테니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다. 또한 Tail Warning Radar라고 불리는 후방경보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었다.[[https://ww2aircraft.net/forum/threads/tail-warning-radar-on-p-51.39448/|#]] 이름은 [[https://forum.warthunder.com/index.php?/topic/171148-anaps-13-tail-warning-radar/|AN/APS-13]]이다. 적기가 후방에서 접근할 경우 경보를 울리는 물건인데, 1942년에 영국공군 폭격 지원 개발부[* Bomber Support Development Unit (BSDU)]에서 개발된 물건으로 원래는 폭격때 요격기 경고용으로 영국 폭격기에 장착되었다고 한다. [* 모니카라고 불린 이 레이더는 이미 추락한 영국 폭격기를 통해 독일에게 분석당했었다고 한다. 독일은 패시브 레이더 추적기를 개발해서 역으로 야간 폭격때 역추적으로 되려 쉽게 영국 폭격기들을 격추했었고, 영국공군은 한동안 그 사실을 몰랐다가 나중에서야 이 패시브 레이더 추적기를 장착한 [[Ju88]] 야간 전투기가 44년 7월에 영국 비행장에 착륙하고 그걸 분석하고 나서야 알게 되어 영국 모든 폭격기의 모니카를 다 철거해 버렸다고 한다. 그 뒤에 나온 개선판이 AN/APS-13다.] 후에 소형화가 이루어져서 전투기 중에서는 P-38L이나 P-47과 P-51 등 소수의 영미 전투기 후기형에 장착됐다고 한다. 이 전투기들의 꼬리날개에 IUI 모양으로 나와 있는 안태나로 식별 가능하다.[* 게임 워썬더에서 나오는 P-51D-30의 꼬리날개에서 장착된걸 볼수가 있다.] UHF 대역의 레이더로 전투기 크기의 타겟은 320m 이하로 접근할 경우 탐지 가능하며, 무언가가 탐지되었을 경우 우측 패널에서 빨간색으로 번쩍이며 경보를 울리며 당연히 켜고 끌 수 있다. [[https://www.tamiya.com/japan/products/60322/index.html|이곳]]에서 어떤 모양인지 자세히 볼 수 있다. 물론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 가능하게하는 [[IFF]] 응답기도 장착되었다고 한다. [[http://pt0riq.blu.livefilestore.com/y1pYzYXEjSwHDaxc4f8V24KZsf2e8zFyPd8fjmqcVsBpPLcxIwg8kmEGkiJosLSQ9e8NytcZ-krqoRMWkMyVvsqpE8Rt8m7mDc_/Fanplot2%20degs.jpg?psid=1|P-51D의 연료를 반 정도로 계산해보면 도리어 수치상으로 Bf 109 G-6와 호각임을 확인할 수 있다.]] [[http://pt0riq.blu.livefilestore.com/y1pFL4U-J_osjAkrHW0COPJjAepau6xwLvqsXxOdIQE6Oi98H_LWmtOgCsRoRwMnstvuTa36HHUa8ZZjtAGGQvuaepbcwmX2mpB/Fanplot%202.jpg?psid=1|선회율 및 상승률]]을 시뮬레이션해본 수치[* 단 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RC 비행기를 위해 개인이 Excel로 제작한 그래프이다. 신뢰성은 보장 못한다.]를 보면 매우 느린 속도가 아닌 이상 호각이다가 빠른 속도로 갈수록 P-51D의 성능이 더 나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상 독일군은 MW50이 달린 G6/AS형을 얼마 생산하지도 못 했으며 생산했다 하더라도 사실상 저급 옥탄가 연료[* 그나마 기본 95를 써야 하는데 당시 원유 공급 사정이 좋지 않아서 89, 87까지 내려갔다.]를 사용했으므로 150 옥탄가를 사용하는 머스탱을 따라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TD7DqXfRno|#]]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